님은 어떠세요? 지도 위의 좌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장소가 하나쯤은 있으시지 않나요? 저에게도 물론 그런 곳이 있습니다. 예매한 자리에 도달하기도 전 관중석2, 3층으로 올라가는 복도 사이사이로 틈틈이 보이는 그라운드, 들어서기만 해도 가벼운 흥분감이 몸으로 전해지고 특유의 공기와 함성, 응원소리, 그리고 그곳에서 보낸 수십 년의 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그런 공간입니다. 1982년에 문을 열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기록을 남기고 큰 행사들을 당당히 치뤄 낸 잠실야구장 이야기입니다. 올해를 끝으로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바로 어제 말 그대로 역사적인 마지막 게임을 치뤘고 그 자리에는 최신식 돔구장이 들어선다고는 하지만, 유년 시절부터 저에게도 40년 동안의 시간들이 묻혀 있는 잠실야구장의 곳곳이 사라진다고 하니 어딘지 모를 먹먹함이 느껴졌습니다.
안녕하세요, 님. Team DAY1 재석입니다.
<나답레터>를 통해서도 종종 말씀드렸지만 제 생활의 커다란 영역 중 하나는 운동이고, 그중에서도 야구는 저에게 대체 불가능한 특별한 스포츠입니다. 사회인 야구를 15년 넘게 해왔고, 초등학교 때까지 잠실에 살며 약간 과장한다면 야구장을 제 집 드나들 듯했거든요. 저는 기아 타이거즈의 오랜 팬인데요, 올해는 예년보다 유독 야구장을 자주 찾았습니다. 얼마 전에는 근 5년 만에 광주 챔피언스필드 원정까지 다녀왔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 어떤 구장보다 익숙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있는 곳은 역시 잠실입니다. 야구장에 얽힌 추억만 풀어놓아도 너끈히 대여섯 시간은 쉬지 않고 떠들 수 있다니까요ㅎㅎ 그런데 얼마 전, 가을바람이 막 불어오기 시작한 잠실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지며 소리 없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은행 창구에서 표를 사던 시절, 서툴렀던 아버지의 사랑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눈시울을 뜨겁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돌아가신 아버지입니다. 딱 일주일 후가 저희 아버지의 기일이에요. 150g 채 되지 않는 야구공과 프로야구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 건 아버지를 따라서였습니다. 맥락이 닿는다면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가끔 얘기하곤 했는데요, 사실 저희 아버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거나 야구를 능숙하게 잘하시는 편이 전혀 아니셨어요. 폼도 어딘가 엉성하셨고, 캐치볼을 해도 공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야구를 너무나 좋아하던 어린 아들을 위해 휴일이면 기꺼이 낡은 글러브를 끼고 함께 캐치볼을 해주셨고, 숨이 턱 끝까지 찰 때까지 운동장을 함께 달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잘하지 못해도 단 1분이라도 더 아들과 함께 시간을 쌓아 주시려던 그 서툰 몸짓이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모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잠실야구장의 가장 높은 곳 한가운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저에게는 남다른 추억의 장소입니다.
요즘에는 (예매 자체가 속된 말로 겁나 빡세기는 해도)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티켓을 예매하는 세상이지만 그 시절 야구 티켓을 사는 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행사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경기 며칠 전부터 종합운동장 매표소 앞에 길게 줄을 서서 종이 티켓을 사야 했고 심지어 가을야구 플레이오프 티켓은 특정 은행 창구에 새벽부터 찾아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만 손에 쥘 수 있었죠. 와…. 제가 말씀드리고도 격세지감이 느껴지고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요 잘 믿기지 않네요. 아버지는 그 번거롭고 지루한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그 귀한 표를 구해와 어린 제 손에 쥐여주곤 하셨습니다.
사라지는 공간과 영원히 남을 기억
경기장 조명탑에 불이 환하게 켜지고 수만 명의 함성이 그라운드를 뒤흔들 때 아버지 곁목을 잡고 올려다보던 푸른 잔디밭 그라운드의 설렘이 아직도 눈에 선하고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합니다. 아버지와 둘이 야구장에 가서 간식으로 컵라면 하나를 나눠 먹고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불렀던 제 몸 곳곳에 그곳에 추억이 남아 있나 봅니다.
어릴 적 관중석의 플라스틱 의자는 비좁고 낡았습니다. 컵홀더 하나 변변치 않고 화장실을 가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오늘을 느낄 수 없은 아날로그 시대의 투박한 온기였네요.
물리적인 공간은 잘 정돈된 흙 바닥과 잔디, 그리고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안에 사람의 마음과 호흡이 덧입혀져 대체될 수 없는 하나의 성소가 되었나 봅니다. 올해를 끝으로 그 익숙한 관중석도, 아버지가 사주신 홈런볼 과자를 집어먹던 그 자리도 모두 허물어지겠지만 그곳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낸 푸르른 시간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찾았던 지난주에는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아버지를 떠나보낸 그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야구장은 사라져도 아버지가 제 마음에 지어주신 그 단단한 또 하나의 야구장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요
진심 어린 마음이 남긴 다정한 유산
나이가 들고 저도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사회에서도 제 몫의 삶을 살아가다 보니 완벽하게 무언가를 잘해내는 것보다 서툴러도 기꺼이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 절감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오롯이 혼자서 무언가를 해낸다는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점점 깨닫게 되고요.
아버지는 야구를 가르쳐줄 만큼 실력이 뛰어하시지는 않았지만 저에게 가장 훌륭한 관중이자 러닝메이트가 되어주셨습니다. 그 서툰 캐치볼이 제게 가르쳐준 것은 어떠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빠르고 편리하게 모든 것을 소비하는 시대에 때로는 은행 창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그 기다림의 시간, 아들을 위해 엉성한 폼으로 공을 던져주던 그 땀방울 같은 비효율이야말로 우리가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 주는 진짜 마음의 근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모든 것이 흘러 지나가 버리고 익숙했던 풍경들도 언젠가는 저마다의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겠지만요.
FOREVER JAMSIL 이라 쓰여진 현수막 앞에서
새로지어질 공간에서 시작된 다음 챕터에 대한 기대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향한 아쉬움이 교차했습니다.
님에게도 코끝이 찡해지며 누군가와의 애틋한 기억이 깃든 시간이나 공간이 있으신가요? 기술이 발달하고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나를 위해 묵묵히 자신의 노력을 내어주었던 그 다정한 시간만큼은 우리 마음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낮 시간은 여름 같은 날도 있지만 이번 주 들어 아침, 저녁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더라고요.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도 따뜻한 기억을 잃지 마시고 오늘도 나만의 것으로 가장 나다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또 봬요!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DNA입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포털의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GS샵, 인터파크, SPC 등 이커머스 회사와 뷰티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잼페이스에서 또 다른 시도들을 거듭하며 '익숙함의 DNA'에 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의 직업인'으로 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변화의 앞자락에 서 있는 IT 회사에서 새로운 차원의 지도 '로드뷰',
그리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에 처음으로 ‘모바일웹’ 서비스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분야에서 크고 작은 캠페인 기획, 마케팅 일을 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점 더 호흡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