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가까이 쓴 다이슨 청소기가 멈춰서 배터리를 갈았습니다. 먼지통도 바꾸려고 샀다가 맞지 않아 반품하고 다시 샀습니다. 배터리는 중국에서 배송을 받았습니다. 배터리를 꽂고 다시 청소기가 작동해서 정말 기뻤습니다.
다용도실 문이 고장 났을 때는 문짝을 아예 떼어냈습니다. 바닥을 보니 바퀴 부분이 휘어 제대로 구르지 못한게 원인이었습니다. 바퀴 주위의 쇠부분을 펴서 다시 조립하니 부드럽게 열리고 닫혔습니다.
현관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습니다. 도어클로저가 끝까지 문을 잡아댕겨 문을 닫지 못했습니다. 다시 떼서 설치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가, 새 제품을 사서 직접 교체했습니다. 잘 닫힙니다. 마지막 '쉭'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닫아주는 도어클로저가 고맙습니다.
벽에 난 구멍도 메꿨습니다. 잘 메꿨냐고요?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메꾸기는 했습니다. ㅎㅎ 부서진 채로 방치된 벽에 뭔가 노력을 했다는 것으로 만족스럽습니다.
며칠 전에는 드레스룸 조명까지 갈았습니다. 전구만 바꾸면 되는 줄 알았는데 등을 통째로 교체해야 했습니다. 우리 집에 달린 건 600×600인데 요즘 나오는 제품은 대부분 640×640이었습니다. 석고보드 앙카를 다시 박기 싫어서 한참을 찾아 대구의 한 조명가게에서 같은 크기의 제품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배송받아 대보니 2~3mm가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앙카를 뽑아 다시 박았습니다. 불이 들어왔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최근 이런 일을 반복하다 보니 문득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뭔가를 고치는 걸 좋아할까.
손재주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닙니다. 대부분 처음 해보는 일이고, 고치다가 오히려 일을 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꽤 재미있습니다.
왜 안 되지? 어디가 문제일까? 이건가?
찾아보고, 해보고, 틀리면 다시 해봅니다. 그러다 원인을 찾아내고 문제가 해결되면 꽤 큰 만족감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20년 넘게 해온 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전에 광고홍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광고를 만들고, 기사를 내고, 기업을 알리는 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저는 결국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기업이 가진 문제에 대해 커뮤니케이션적인 해결 방법을 찾는 일.
이렇게 정의하고 나면 오히려 겸손해집니다.
기업의 모든 문제를 광고나 홍보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인사, 제품, 조직문화, 제도, 연구개발로 풀어야 할 문제가 훨씬 많습니다.
그중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 제대로 된 방법을 제시하는 것.
돌아보면 저는 20년 넘게 그런 일을 해왔습니다. 기업과 사람 사이에 잘못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를 찾아 바로잡는 일이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일이 여전히 재미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요즘 가장 고치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물론 사람은 고쳐 쓰는 물건이 아닙니다.
다 큰 성인에게 이래라저래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도 이제는 압니다.
그런데 가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저것 하나만 조금 달라져도 훨씬 좋을 텐데.
예전처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도 조금은 요령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가능하면 조심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잘 듣지 않습니다.
가끔은 정말 안 들어 처먹습니다. ㅎㅎ
사실 요즘 저는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많은 관심을 쏟으며 살지 않습니다.
혼자 일한 지 7년이 넘었습니다. 회사에 있을 때와 달리 굳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신경 쓸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ChatGPT를 사용하면서는 더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이 복잡하면 사람을 찾았습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요즘은 상당 부분을 ChatGPT와 이야기합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제가 놓친 것을 찾아보고, 때로는 제 생각을 반박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삶에 관심을 쏟을 이유가 더 줄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족, 친구, 함께 일하는 사람처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는데도 ‘괜히 싫은 소리 하지 말자’며 입을 닫는 것이 과연 좋은 관계일까요.
물론 제 생각이 틀릴 수 있습니다.
제 말을 따르라고 할 권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줄 책임 정도는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들을지 말지는 그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주변에서 특이하다는 이야기를 꽤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그렇게까지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에도 일종의 정규분포가 있다면 저 역시 대부분 그 안에서 살아갑니다.
다만 가능하면 그 분포의 경계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평소에는 상식 안에서 살지만 때로는 가장자리까지 가보고, 필요하면 경계를 넘어 반대편에서 제가 있던 곳을 바라봅니다.
언젠가 도올 선생님이 이야기한 ‘군자’에서 저는 비슷한 생각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받아들인 군자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 아니라 경계에 설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안에 있으면서 바깥을 보고, 때로는 바깥으로 나가 자신이 있던 곳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사람.
안에만 있으면 당연한 것은 계속 당연하게 보입니다.
경계까지 가야 당연했던 것을 의심할 수 있고, 때로는 경계를 넘어야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저는 그게 객관성의 출발이고, 창의성과 혁신도 거기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에 서야 양쪽을 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를 맞춰보는 것. 그것도 메타인지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과 행동의 이유를 많이 설명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런 저를 보고 ‘주장이 강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수긍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화를 포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 이야기하는 쪽을 택합니다.
제가 어려워하는 사람은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자의식에 비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방식으로 잘 살아왔다고 해서 그 방식이 앞으로도 계속 옳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0년 넘게 한 분야에서 일했다고 해서 제가 알고 있는 방식이 계속 정답일 리 없습니다.
오히려 오래 일할수록 자신의 경험과 확신을 더 경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질문은 저에게 돌아옵니다.
나는 아직 고쳐지는 사람인가.
누군가 저에게 “그건 조금 이상한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저도 바로 인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 생각을 설명하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물어보겠죠.
그래도 돌아와서는 한번 생각해봅니다.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나.
조명은 앙카를 다시 박으면 됩니다.
다용도실 문은 뜯어 고치면 되고, 도어클로저는 교체하면 됩니다. 벽에 난 구멍은 조금 못생겼더라도 메꾸면 되고, 다이슨은 배터리를 갈았더니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다른 사람을 고치겠다는 생각부터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이야기할 것 같습니다.
때로는 싫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관심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가 관심이고 어디서부터가 오지랖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 경계에서도 계속 고민하겠죠.
대신 하나는 계속 확인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 저에게도 가끔 이야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한번 고쳐보는 게 어때?”
바로 인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돌아와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혹시 내가 고쳐야 할 것이 있나.
그 정도면 아직은,
고쳐 쓸 만한 인간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