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덥다"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에는 홍대역 근처를 걷는데 뭔가 불 속에 있는 듯한 느낌까지 들더군요. 이럴 때일 수록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챙겨야 합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 짜증내기 쉬운 요즘 지난 주 재석 님의 글을 읽으며 시원한 바람같은 작은 칭찬을 옆사람에게 건네주면 좋을 것 같네요.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칭찬도 중요하지만 스스로에게도 좋은 말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칭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칭찬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의미에서 저는 지난 글 이후로 커피를 계속 끊고 있는데요. 그런 저를 칭찬하며 이번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게요.
커피를 4주동안 끊었지만...
지난 4주 동안 커피를 딱 한 번 마셨습니다. 강의를 갔는데 담당자 분께서 특별히 저를 위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챙겨주셨거든요. 그 마음을 거절하면 안될 것 같아서 싹 비우고 왔는데요. 그것을 제외하면 제 의지로 커피를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네요.
그렇게 4주 동안 커피를 끊으면 뭔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줄 알았는데 그러진 않더군요. 커피를 마실 때도 잘 잤던 터라, 수면의 질이 더 좋아진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큰 변화를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해 살짝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얻었던 것은,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평소 저는 하루에 두 잔은 무조건 마셔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커피가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실상은 커피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었어요. 커피를 마시는 행동이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습관처럼 흘러가는 무의식적인 루틴이었던 거죠.
'그냥 늘 하던 거니까'라는 이유로 내 손은 자동처럼 컵을 들었고, 몸은 저항 없이 따라갔었더라고요.
그저 익숙해졌을 뿐
최근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위를 한 가지 더 발견했습니다. 제가 동영상을 볼 때 1.2 배속으로 보더군요. 조금이라도 지루해질 것 같으면 다음 장면으로 휙 넘겨버리기도 하고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시간은 아껴야 해”라는 생각이 몸에 밴 듯해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신기한 건요, 1.2배속은 3초면 익숙해진다는 점입니다. 처음엔 좀 빠르게 느껴지다가, 곧 그 속도가 편안해져요. 문제는 그다음이죠. 이제는 일반 속도의 영상이 너무 느리고, ‘10초 넘기기’도 없는 영상은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속도가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저는 자극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었던 거예요.
그 익숙함은 어느새 저에게 “뉴노멀”이 되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보고 있지?' 라는 질문조차 하지 않게 될 정도로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극에 이끌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삶,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괜찮을 겁니다.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별것도 아닌 일에 괜한 문제를 제기하는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 무의식적인 반복이 과연 나에게 좋은 일인가? 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늘 켜던 앱을 켜고,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고, 빠르게 영상을 넘기는 일이 정말 내 삶에서 중요한 일이 맞을까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모든 걸 바꾸고 싶어진 건 아니지만 한 번쯤 멈춰서 ‘왜?’라고 묻는 나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자각이, 익숙함 속에서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더라고요. 그게 아주 작은 전환이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요즘은, 그런 작고 느린 경험들이 제게 오히려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4주 만에 마시는 커피는 어떤 맛일까요? 1.2배속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영상은 또 어떤 잔잔한 여운을 줄까요?
효율적인 삶에 흠집내보기
삶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가 그 단조로움을 직접 만들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세팅된 패턴들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지만, 너무 익숙해지면 오히려 권태를 부르기도 하니까요.
서은국 교수님의 『행복의 기원』을 읽다 보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는 문장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자주 느끼는 행복을 위해서는 익숙함에서 조금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보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시작은, 일상에 작은 흠집을 내보는 일이죠.
효율을 추구하는 삶과 별개로, 그 효율에 가볍게 흠집 하나 내보는 것. 그건 어쩌면 우리가 일상을 새롭게 느끼는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게, 행복의 빈도를 조금 더 자주 불러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고요.
예를 들면 이런 거요. 매번 지하철에서 집까지 가는 최단 경로 대신, 조금 돌아서 걸어가 보기. 늘 마시던 음료 대신, 한 번도 시켜본 적 없는 새로운 음료를 주문해 보기. 그런 사소한 시도들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예상치 못한 기쁨을 데려다 주기도 할겁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얻어 걸리는 것’이 있을 겁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처럼 글감으로라도 나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