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3시간 쯤은 걸었나 봐요. 말레이시아 페낭의 중심지 조지타운 거리 곳곳을 보고 걷고 느꼈습니다. 지난달에는 3주 정도를 페낭에서 보냈어요. 아내와 아이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말레이시아 방문이었죠. 집순이 중의 집순이인 초딩 따님 덕분에... 그동안 궁금해하던 페낭 곳곳을 다니기 쉽지 않았는데 이번 방문에는 아내와 둘이, 그리고 가끔은 아이와 함께 셋이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시간이 있었어요. 감사한 일입니다.
안녕하세요, 님. Team DAY1 재석입니다.
높은 빈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2-3번씩 뛰면서 헥헥대며 여전히 미숙하게 달리기를 하는 반면, 어릴 적부터 지금도 뇌를 반쯤 내려놓고(?) 한없이 걷는 일에는 자신 있습니다. 제가 뭐... 뇌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뛸 때와 걷을 때는 뇌에서 완전히 서로 다른 영역을 활성화한다고 해요. 외부로 시선이 확장되면서 뇌는 의도치 않게 주변의 다양한 자극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발산적 탐색' 모드로 전환된다는 얘기. 뛰는 행위가 꽉차있는 메모리를 비워내는 과정이라면 걷는 일은 새로운 맥락과 또 새로운 생각을 덧입히는 확장의 작업에 가깝습니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도 아닌 것이 일상도 아닌 시간이었지만
말레이시아는 1년 내내 여름이 이어지는 나라죠. 바다를 바로 끼고 있는 페낭 지역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낮의 온도는 분명 35도~40도 사이를 오르내리지만 제가 체감하는 습도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그늘 아래로 들어서면 공기의 제법 가벼운 공기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다시 가을이 찾아왔지만 페낭의 아침, 저녁은 건기와 우기를 가리지 않고 초봄이나 초가을 같은 날씨예요.
이번에는 이전과는 달리 갑작스럽게 일정을 잡게 된 것이라 꼭 해야 할 중요한 일들만 정리하고 서둘러 짐을 챙기게 되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인데... 휴가도 아닌 것이 일상의 연속이기도 하면서 그런데 평소와는 분명 다른 일의 패턴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떠나게 되었죠. 그러니 평소 여행을 가듯이 단순히 휴가지가 주는 해방감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비교적 길게 머무는 만큼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짬짬이 일도 하면서 가보고 싶고 궁금해하던 곳들을 둘러볼 수 있겠다는 기대도 있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조지타운이라는 곳이었어요. 긴 역사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장소일 겁니다.
새로운 것을 관찰하는 걷는 시간과 120년의 흐름
걷고 또 걷다 보니 차를 타고 지나갔던 배경과는 다른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시속 30km, 60km의 속도에서는 건물의 전체적인 윤곽 정도만 보면서 셔터를 누르기 바빴었는데 시속 4km도 안되는 속도로 걷는 동안 새로운 것들을 선명하게 관찰하기도 하고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다 걷다를 반복했어요.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떤 말레이시아 페낭의 조지타운은 1786년 영국 동인도 회사의 프랜시스 라이트 선장이 당시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이름을 따서 개척한 이래 240년 가까운 해상 무역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특히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주석과 고무 무역으로 항구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중국 남부의 복건성과 광동성, 인도, 유럽 각지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이 각자의 양식을 뒤섞어 지금의 독특한 골목 풍경을 완성했다고 하네요. 지금도 익숙한 아시아의 풍경 내지는 중국의 어딘가인가 싶다가도 한발 떨어져 다시 살펴보면 오래된 유럽의 어느 거리에 온 듯한 이국적인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곳이죠.
호기심이 발동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 렌즈'로 오래된 건물들을 비추면면, 무심코 지나칠 뻔했던 평범한 식당이나 작은 잡화점이 웬만하면 1890년대나 1900년대 초반에 지어진 120년 안팎의 건물들이더군요. 1층은 상점으로 장사를 하고 2층은 집으로 쓰던 이민자들의 치열한 생계 흔적이 기둥의 코니스 장식과 낡은 목조 덧문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제 사진 속에 담긴 궁금증을 바로바로 풀어 주는 구글 렌즈라는 도구와 걷기라는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시간이 결합하면서 도시는 단순한 관광이 아닌 오랜 삶이 묻어 있는 사색의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걷기는 이처럼 잘 모르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트이게 하고 눈에 보이는 풍경 뒤에 숨겨진 맥락을 찾게 하더라고요.
오..오..오.. 궁금한 건물들을 찾아보면 웬만하면 120년은 훌쩍 넘은 곳들...
발걸음은 쉬엄쉬엄, 축적된 시간을 곱씹어 보게 되는 조지타운이었습니다.
츄제티에서 탄제티까지의 시간 여행
조지타운에서 걸어서 5분 남짓, 아주 가깝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항구의 번영과 함께 바다 위 수상가옥으로 터전을 넓혀간 중국계 집성촌인 '츄제티 Chew Jetty'와 '탄제티 Tan Jetty'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 이곳의 풍경을 보는 순간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나올 법한 풍경이라는 인상은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방송에 나온 곳이더라고요ㅎㅎ 독특한 수상가옥과 좁다란 바다 위 데크 걸을 때의 경험은 또 다른 차원의 감각이 느껴집니다. 성이 같은 일족끼리 갯벌 위에 단단한 목조 기둥을 박고 집을 짓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은 수상가옥 마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걱거리며 반응하는 판자의 탄성, 코끝을 스치는 바다 내음과 기둥 아래로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잔잔한 리듬이 발 아래로 전해집니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속으로ㅎㅎ
전통과 시간을 간직한 츄제티, 탄제티 수상 가옥
우리가 일상에서 쫓고 쫓기는 조급함과 불안은 일어나지 않은 걱정에서 비롯되기도 하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제하려다 보니 스스로 과열되는그런 거요. 이곳의 삐걱거리는 나무다리를 지나 조지타운의 좁은 골목길로 이어지는 길을 직접 발로 디딜 때의 변화하는 풍경에서 걷는 속도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선으로 단단하게 복귀시킵니다.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거센 조류와 비바람을 버텨낸 수상가옥의 나무 기둥처럼 진짜 견고한 통찰은 머릿속 가설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딫치는 경험으로 축적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발걸음 옮겨지는 대로 목적 없이 걷는 길
우리가 목적적이고 구체적인 과제에 집중하지 않고 이완된 상태에서 쉬거나 산책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연결망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릅니다. 직장에서나 일상에서 우리는 늘 명확한 KPI와 정해진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달리고 있죠. 이는 효율적인 성과를 내는 데 필수적이지만 때로는 때로는 시야를 좁게 만들고 기존의 사고 패턴에 갇히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역설적이게도 집중을 멈추고 머리를 비우려고 노력할 때 불쑥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조지타운 골목골목을 걷는 시간을 통해 저는 의도적인 여백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정해진 목적지도, 당장 달성해야 할 목표나 제약도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모퉁이를 돌고 낯선 풍경에 멈추어 서는 과정 속에서 한국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던 고민들이 한 발짝 떨어진 시선으로 재배치되는 것을 느꼈어요.
이곳에서의 걷기는 단순히 칼로리를 소모하는 유산소 운동이 아니였어요.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느슨하게 연결하여 새로운 통찰을 빚어내는 고도의 사고 정돈의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빠르게 달릴 것을 요구합니다. 남들보다 한 박자 빠르게 반응하고 효율적으로, 뒤쳐지지 않게 압축적인 성과를 증명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찾아오게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춰야만 확보되는 생각의 여백이 있습니다. 너무 좁아진 시야 속에서 해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집중이 아니라 한숨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일지도 모르겠어요.
님, 혹시 지금도 머릿속의 과부하로 인해 생각이 엉켜 있다면 이번 주에는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발걸음 닿는 대로 천천히 걸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내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시선의 해상도를 조금만 높여보는 겁니다.
빠르게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세상의 묵직한 결들이 풀리지 않던 해답을 건네줄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님만의 보폭과 리듬을 잃지 않는 가장 나다운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또 봬요~!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DNA입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포털의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GS샵, 인터파크, SPC 등 이커머스 회사와 뷰티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잼페이스에서 또 다른 시도들을 거듭하며 '익숙함의 DNA'에 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의 직업인'으로 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변화의 앞자락에 서 있는 IT 회사에서 새로운 차원의 지도 '로드뷰',
그리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에 처음으로 ‘모바일웹’ 서비스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분야에서 크고 작은 캠페인 기획, 마케팅 일을 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점 더 호흡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