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보면, 우리 사회에는 ‘관계’에 있어 독특한 규범이 있어요. 흔히 말하는 ‘국룰’ 같은 것입니다. 일정 기간 알고 지내거나 술자리를 몇 번 함께하다 보면 금세 말을 놓고 ‘형동생’ 관계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남녀 사이에서처럼 동성 간에서 술을 깨고 나면 어색해지는 일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언어 습관을 넘어 서로 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사회적 과정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안녕하세요. 님. Team DAY1 재석입니다. 오늘의 117번째 편지로 저희와 또 한 번 가까워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국룰’에 공감하시나요? 사실, 저는 주변에서 누구보다 사교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 편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비교적 짧은 시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자의든 타의든 어떤 모임의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을 자주 맡기도 해요. 그런데 말압니다. 한편으로는 오래 알고 지낸 이들에게, 특히 저보다 나이가 어린 분들에게도 말을 쉽게 놓지 못하는 의외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껏 반존대 정도 하면 제가 상대를 편하게 느낀다는 표현이 되기도 해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더 선명해지는 빛
얼마 전에도 관련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양꼬치를 먹는 자리에서 그래도 5년 가까이 알고 지내며 저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분을 만났어요. 소위 ‘일로 만난 사이’이긴 하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일 얘기만큼이나 서로의 일상 얘기를 더 많이 나누고, 여러 번 술자리에서는 서로 아는 사람들을 소개해 관계를 넓히며 시간을 즐기기도 하는 사이. 그럼에도 여전히 저는 그 분께 존댓말을 쓰고 있더군요.
얼마 전 또 양양에 갔었죠.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하늘의 별들-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더 선명해지는 빛도 있습니다.
이 친구 역시 저에게 몇 번 말을 놔 달라고, 형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했었죠. 그런데 저는 그게 잘 안되네요. 여전히 아주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통 처음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자리에서 어떤 화법으로 서로를 대했는지가 저에게는 이후 말을 쉽게 놓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심리적 경계라는 안전지대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존대를 하면서도 친밀하게 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 속도를 똑같이 하지는 못합니다. 저에게 ‘말을 놓는다’는 건 단순한 언어 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관계의 경계를 넘어서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 경계가 흔들리는 순간 불편함을 크게 느끼는 사람인 듯해요. 다른 말로, ‘존댓말’이 저에게 하나의 안전지대라는 것이죠. 서로 존중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적절한 거리를 보장하는 장치 같은? 저 자신에 대한 그 ‘안전지대’가 말을 놓기로 한 순간 허물어지고 관계의 차원이 달라지는 기분을 느끼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조심스럽게 더 오래 걸려서 말이죠. 외향적인 성격이라도 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웃으며 어울리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는 일에는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속도보다는 방향, 관계의 리듬
이러한 순간 존댓말을 계속 쓰는 제가 스스로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다움'이라는 방향을 향해 가네요. 친밀함에도 다양한 모양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빠르게 거리를 좁히며 안도감을 얻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경계를 지켜가며 오히려 그 안에서 더 깊은 신뢰를 쌓기도 하잖아요. 저는 후자의 방식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겠죠. 사회적 규범과 나의 속도가 다르더라도 그 또한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관계는 결국 서로가 편안해야 오래 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리듬대로 관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많은 일들에는 결국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데 대한 저의 ‘나다움’ 이야기였습니다.
아~ 그리고 다음주 추석 연휴에는 <나답레터>가 한 주 쉬어 가려고 해요. 이 역시 저희의 리듬이라 생각하고 양해 구하고자 합니다. 한가위만 같아라. 풍성한 명절 보내세요~!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DNA입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포털의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GS샵, 인터파크, SPC 등 이커머스 회사와 뷰티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잼페이스에서 또 다른 시도들을 거듭하며 '익숙함의 DNA'에 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의 직업인'으로 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변화의 앞자락에 서 있는 IT 회사에서 새로운 차원의 지도 '로드뷰',
그리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에 처음으로 ‘모바일웹’ 서비스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분야에서 크고 작은 캠페인 기획, 마케팅 일을 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점 더 호흡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