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서 핵심 키워드는 "질투심"이 아닐까 싶었는데요. 서로를 힘들게 하는 부분도, 반대로 서로에게 에너지가 되는 부분도 바로 질투라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질투에 대해서 좀 더 찾아봤는데요. 질투의 어원이 흥미로웠습니다.
질투의 영어 단어인 jealousy는 라틴어 'zelosus'에서 유래했고, '열정'을 뜻하는 'zeal'과 어원을 공유합니다. 이는 질투가 일종의 강한 감정이나 열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 질투를 느낀다면,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내 욕망이 꿈틀대는 지점이 드러난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어 보였어요.
물론 질투라는 것이 부정적인 감정인 것은 맞습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이 뒤섞이니까요. 그렇다고 올라오는 감정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일은 가능합니다. 질투가 올라오는 순간 열등감으로 자신을 비하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어떤 것을 성취하고 싶은가를 묻는 거울로 활용해 보는 것이 그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은중과 상연>을 만든 감독 또한 인터뷰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서툴고 흔들리는 순간조차 결국은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일부가 아닐까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불완전하지만 진심이 깃들었던 그 순간들 덕분에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또 성장해 나가니까요."
감독의 인터뷰에서 질투를 부정하기 보다는 인정하고 조심스레 다루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는 읽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타인을 짓누르는 것을 넘어서 나를 더 선명하게 알아차리게 하는 신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내 욕망이 닿아 있는 곳
드라마 속 질투를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건, 제가 원래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인정 욕구가 강했고, 그만큼 자주 질투가 올라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남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열등감이 밀려왔고, 스스로를 자주 꾸짖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감정이 항상 나쁜 쪽으로만 흐르지는 않더군요. 제게 질투는 강한 자극이었고,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습니다. 승부욕으로 번지면서 “나도 해보겠다”는 에너지가 올라왔고, 이를 악물고 성취로 이어간 적도 많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늘 건강하지는 않았고, 저도 상처를 받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 시간을 통해 감정에 대응하는 방법을 조금씩 몸으로 익혔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쓸모없는 비교에 질투를 쓰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걸 잘하려 애쓰기보다, 질투가 올라오는 순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확인하는 신호로 삼습니다. 그 욕망을 분명히 한 다음,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로 방향을 바꾸려 합니다.
요즘 저의 질투는 "말을 잘 하는 사람" 에게 향합니다. 주변에 말 잘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들을 볼 때마다 질투심이 활활 타오릅니다. 유머와 재치를 갖추고도, 필요할 때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정확히 던지는 분들이 정말 부럽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절실한 능력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투가 올라오면, “내가 어떤 말의 힘을 갖고 싶은가, 그걸 위해 오늘 무엇을 연습할 것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구독자님들은 요즘 어떤 지점에서 질투를 느끼고 계신가요? 그 감정의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숨어 있을 겁니다. 오늘 하루, 질투를 부정하기 보다는 내 욕망을 확인하는 신호로 써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