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작년 여름에도 같은 생각을 했었는네요. 올해도 유난히 길고 뜨거웠던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예년보다 이르게 시작된 여름, 매년 갱신되는 최고 기온의 기록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습도 속에서 "올해 여름은 유독 힘들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던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까지 올해 서울의 7~8월 평균 기온은 35도 안팎에, 습도까지 감안하면 체감 온도는 거의 40도에 육박하고 았어요. 또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이상 고온의 뉴스를 접할 때면 계절의 변화 앞에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불쑥 찾아오기도 하죠.
입추 매직, 잘 즐기고 계신가요?
저는 지금 아내와 아이가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페낭에 와 있어요. 적도와 가까운 동남아시아의 한낮 기온은 분명 숫자상으로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습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날이 많아 그늘 아래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쾌적하게 느껴지도 합니다. 작년 이맘때쯤에도 이곳에서 비슷한 계절의 감각을 느꼈었는데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페낭으로 출발하기 며칠 전이 한국에서는 입추였어요. '입추 매직'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한낮의 뙤약볕은 여전히 발밑을 녹일 듯 뜨거웠지만 입추가 지나자마자 이른 아침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늦은 저녁 공기가 달라지더라고요. 곧 다가올 것 같은 초가을의 선선함을 맞이하며 긴긴 여름도 결국에는 지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기라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무색하지 않게 아무리 지독한 폭염도 결국 시간의 순리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다는 단순한 사실을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 페낭에 와 있습니다. 여전히 바다를 좋아해요
집앞에서 바다가 보이는 테라스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견디지 못할 것 같던 시간도 결국 흐른다는 것
한여름의 폭염에 갇혀 있을 때는 이 계절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죠. 더위를 누그러뜨려 주는 에어컨이 참 고맙게 느껴지면서도 곳곳의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끈적이는 그 주변에서 하루를 버텨내다 보면 가을의 청명한 하늘이나 겨울의 서늘한 공기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연과 시간은 결국 결절의 변화를 불러옵니다. 우리가 더위에 지쳐 불평하고 힘겨워하는 동안에도 태양의 고도는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고 밤의 길이는 매일 몇 분씩 길어지고 있었겠죠? 누구나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의 구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을 마주하며 매 순간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지만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프로젝트의 압박과 스트레스, 아무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숱한 문제들, 하루하루를 짓누르는 일과 삶의 무게 앞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종종 그 터널 안에 영원히 갇혀 있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합니다.
하지만 모든 시간은 결국 흐르잖아요. 멈추어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때, 보이지 않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계절은 또 바뀌고 있고 견뎌낸 시간만큼 우리는 조금씩 다른 계절의 문턱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 영원히 머무는 폭염이 없듯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과 걱정 또한 없습니다. 얼마 전 호진님이 전해 주신 이야기처럼 많은 걱 정과 염려들이 막상 마주하고 보면 별것 아니기도 하고 지나고 보면 알게 모르게 시간이 해결해 주었던 것들 또한 많다는 사실.
올여름에도 우리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참 많은 것들을 견뎌내야 했을 겁니다. 지치는 몸을 이끌고 아침마다 불쾌지수 높은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했고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일들을 마주하며 땀과 한숨을 닦아 내기 바빴죠. 일이라는 게 참 그래요. 항상 높은 성과와 극대화된 효율, 빠른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화려한 전략보다 값진 것은 '그냥 그 자리를 지켜내는 일' 그 자체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눈을 뜨고 나에게 주어진 몫의 하루를 살아내고, 작은 루틴들을 이어가며 묵묵히 자리를 지킨 것.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마라톤에서 가장 단단한 실행 데이터일 겁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 대단한 결과물을 내놓아야만 가치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탈진할 것 같은 더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늘을 걷고 있다는 점,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대단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연은 묵묵히 여름의 무더위를 몰아내고 가을의 신선함을 준비하듯, 우리가 온몸으로 버텨낸 이 여름의 시간 역시 보이지 않지만 단단한 시간의 근육과 깊이를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는 기쁜 마음
뜨거운 햇볕 아래서 지친 마음을 달래느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거나 내 안의 조급함과 싸우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제 곧 공기의 온도도, 하늘의 높이도 달라지는 쾌적한 계절이 성큼 다가올 것예요. 계절이 바뀌는 길목에 서서 가장 먼저 해주어야 할 일은 나 자신을 향한 따뜻한 토닥임입니다.
"올여름도 참 고생 많았어. 뜨거운 시간을 잘 건너왔구나."
충고나 조언, 혹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거창한 계획 대신 그저 존재 자체로 계절을 버텨낸 나에게 건네는 소박한 인정이야말로 다음 계절을 살아갈 가장 든든한 힘이 되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지나간 여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결국 흘러간다'는 가장 단순하고도 명쾌한 진리를 또 한 번 남겨주었네요. 님, 혹시 지금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언가와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시진 않나요? 너무 조급해하지 맙시다. 시간과 계절의 순리처럼 아닌 듯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올 거예요.
올여름, 뜨거운 일상을 묵묵히 견디고 살아내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바람의 결이 바뀌는 이 계절의 사이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가장 나다운 시간을 누리시길 바라겠습니다. 또 봬요~!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DNA입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포털의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GS샵, 인터파크, SPC 등 이커머스 회사와 뷰티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잼페이스에서 또 다른 시도들을 거듭하며 '익숙함의 DNA'에 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의 직업인'으로 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변화의 앞자락에 서 있는 IT 회사에서 새로운 차원의 지도 '로드뷰',
그리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에 처음으로 ‘모바일웹’ 서비스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분야에서 크고 작은 캠페인 기획, 마케팅 일을 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점 더 호흡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