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이 부쩍 썰렁해졌죠. 길었던 여름은 어느새 저물고, 커피숍에서는 캐럴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간 참 빠릅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다 보니 벌써 한 해의 끝자락이네요. 그래도 아직 한 달 넘게 남아 있습니다. 2025년의 마지막 장면을 잘 마무리해 보자고요.
최근 저는 조금 느리게 1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놓치지 않으려는 감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감사’입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도 돌이켜 보면 수많은 사람과 순간 덕분에 가능했던 것들이더라고요. 그 마음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레 겸손해지고, 주변에 더 애정이 생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주 재석님의 뉴스레터는 감사하며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일깨워 주었죠.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혹은 한 번 더 곱씹고 싶다면 아래 링크로 보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3년 전부터 매년 6주 동안 ‘서른 개의 질문으로 한 해를 돌아보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가지 질문씩 답을 하면서 1년을 돌아보고 있는데요. 혼자하기 어려워 여러 사람과 함께 답을 나누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1년에 점을 찍는 일 같아 늘 즐겁습니다. 매번 저를 새롭게 보게 되기도 하고요.
지난 월요일의 질문은 “2025년의 새로운 경험은 무엇이었나요?”였습니다. 제가 던진 질문이었지만 막상 답하려니 쉽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사진첩을 넘기다 떠올랐던 건, 올해 교정본부(교도소)에서의 강의였습니다.
그곳에서는 공무원분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는데, 어떤 교정시설은 수감자 구역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수감자들이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제 이동 시간이 겹쳤습니다. 그리고 몇몇의 수감자들을 마주칠 수 있었는데요. 그 순간 제 마음이 쿵쾅거렸어요. 눈을 마주치면 안 될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강의장으로 향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수감자 대상 프로그램을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막상 그 공간을 지나니, 제 안의 두려움이 크게 올라왔습니다. 이성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죠. 그때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제 마음의 문이 덜 열려 있었다는 걸요.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조력사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정말 아픈 사람들에게 그들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나라에도 법 개정이 필요해 보였어요.
그런데 지난주 지인의 어머니 부고 소식을 들었어요. 캐나다 출신으로 어머니도 한국에 오셔서 광장시장 투어도 같이 갔었는데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의 의지가 강해서 조력사망을 선택하셨다고, 그래서 온 가족이 둘러보는 앞에서 웃으면서 생을 마감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캐나다는 몇 년 전에 합법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더군요. 분명 최근에 고민했던 사안인데 제가 뵈었던 분이 그런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니 과연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남은 분들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 생명 연장에 대한 기적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들더라고요.
이 두 가지 경험을 통해 머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마음에서 다른 반응을 일으키는, 제 안의 모순과 마주했습니다. 동시에 생각과 감정이 꼭 같은 방향으로 향햐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정작 제가 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는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중요한 것이 많이 경험해 보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진짜 나를 또는 내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의 터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터널을 통과하는 사이 내 마음 속의 그래야만 하는 당위나, 편협된 사고에서 비롯된 편견 등이 벗겨집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떻게 수용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런 터널을 여러차례 지나다 보면 진짜 내 신념이 쌓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짜 변화는 경험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그때 우리는 경험 속에서 감정을 다시 읽고 그것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를 나의 의미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진짜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경험과 복기의 이중주가 어우러질 때 내 진짜 생각이 드러나게 되는 셈이죠.
2025년 11월 11일 (앗, 쓰고 보니 빼빼로데이네요) 현재,
어떤 경험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요?
그 경험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매번 그것을 다 따지는 것은 삶을 피곤하게 만들테지만, 경험을 많이 해보고, 중요한 경험에 대해서는 돌아보는 것만큼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그리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필요한 것임을 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모순을 발견할 수도, 주변의 감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