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될 무렵 40여 년 동안 같은 일을 해 오시던 어머니의 마지막 출근길을 배웅해 드렸습니다. 어머니 마음이 어떠실까, 제가 그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괜히 초조하고 두근거리며 눈치를 보는데 어머니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으셨어요. 오히려 담담해 보이시기까지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님. Team DAY1 재석입니다. 조금은 오래된 이 편지를 혹시 기억하시나요? <나답레터>를 보내기 시작하고 꼬박 두 달이 되던 여덟번째 글의 일부입니다. 일을 하면서 항상 제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은퇴식에 관한 기억을 적었더랬죠.
그리고
“회사에 출근을 했다가 오후 반차를 내고 꽃다발을 사 들고 행사가 진행되는 어머니의 직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지금은 핫플이 된 성수동 근처의 어느 공간이었어요. 몇몇 순서를 거쳐 축사를 받으신 어머니께서 후배분들께 답사 말씀을 하시는데, “은퇴도 과정이더라”는 첫마디에 주위가 모아졌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그날 아침 어머니의 표정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그랬구나, 그래서 담담하게 또 하루를 맞이하신 거구나.” 라고 이어갔습니다.
두 편을 읽으며 ‘은퇴’의 의미와 ‘일의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어머니의 은퇴’를 주제로 예전에 보내드렸던 <나답레터>를 다시 꺼내 보았습니다. 은퇴도 과정이다…라는 말씀을 곱씹어 보며, 이제는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변해가는 ‘일의 환경’을 둘러보고 저 스스로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은퇴의 기준이 나이였을 겁니다. 다시 말해,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혹은 경제적 여유가 충분해지면 자연스럽게 일은 손을 놓게 되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보는 ‘은퇴’의 의미
그런데 요즘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은퇴의 의미도 ‘나답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거든요.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저만의 언어로 ‘일’을 재정의하면서, 동시에 ‘은퇴’라는 말의 경계도 새로 그려볼 수 있겠다고 스스로 정리해보기로 했습니다.
“단 하루라도,
나의 쓰임새가 단 한 명에게라도 가치 있다면
나는 아직 은퇴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장을 처음 떠올렸을 때 묘한 해방감이 찾아왔습니다. 그 일로 큰 돈을 벌지 않아도 좋고 내가 나의 시간을 들여 누군가에게 의미 있기를 바란다는 의미. 또는 나 스스로 만들어가는 가치로 성장하고 작은 성과라도 계속 쌓아갈 수 있다면 나는 여전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려보려고 합니다. 일이란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행위인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그 일이 자신의 마음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누가 나를 고용하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행동한다면 그것도 분명 ‘일’의 한 형태라고 정하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간 제가 해 왔던 방식들이 그래요. 대부분의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는 기업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사이드잡의 기회들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상황에 따라 휴직을 하거나 퇴사 후 공백이 생길 때는 사이드잡으로 해 오던 일이 본업이 되기도 하고요. <나답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도 호기님, 상혁님, 호진님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꾸렸던 '일에 관한 세미나'였습니다. <나답레터>를 통해 협업 제안을 받기도 하고, 일하면서 쌓았던 경험을 토대로 강의와 컨설팅 일도 지속하고 있죠. 커머스 분야에서의 마케팅 경험을 바탕으로 셀러가 되어 보기도 하고 또 그 경험이 초석이 되어 얼마 전부터는 새로운 브랜드를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어떤 조직에 소속되어 있을 때, 또는 그렇지 않고 혼자 일하기 기간에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어요.
은퇴의 기준도 역시 내 마음속에 있더라고요
일을 하면서 점점 중요하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그 일이 나 스스로를 얼마나 ‘살아 있고 성장하는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느냐입니다. 성과나 보상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나답게 일한다’는 것의 정의는 다른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결정하고 애써 노력을 들이는 일들이 시간과 나이를 초월해서 계속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답레터> 역시 누가 요청하지 않아도 꾸준히 이 편지를 쓰는 시간은 여전히 긴장과 설렘을 주고 성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때로는 하루 종일 머리를 굴려야 한 줄이 나올까 말까 한 날도 있지만, 그래도 그 모든 과정을 포함해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홀로선 각자 서로의 이름을 부릅시다" - 2021년 줄쳐가며 읽었던 책 <그냥하지말라>를 시작으로 <시대예보> 시리즈까지
책으로 만나며 팬심을 키워왔던 송길영 작가님과 얼마 전 현실 만남을 가졌어요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강연도 들으며 일을 시작하는 것, 지속하는 것,
그리고 끝마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고루 담는 시간이었습다.
요즘처럼 '일의 정의'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대에 은퇴의 정의도 유연해질 수밖에 없고, 그래야 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때로는 ‘고정적인 고용’의 형태가 아닐 수도 있고 꼭 단기적인 결과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 보다 긴 호흡으로 내가 나다워지는데 힘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물론 언젠가, 어느 날, 어어언~젠가는 정말로 일에 손을 놓아야 할 날이 오겠죠. 몸이 허락하지 않거나 마음이 바닥을 드러낼 때, 그때가 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일 아닌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지금 이 순간, 저는 아직 저만의 방식으로 일하는 중입니다. 어쩌면 이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성공적인 은퇴’가 아니라 ‘나답게 정의한 은퇴’일지도 모릅니다.
정리하면, ‘은퇴’에 대한 저의 기준은 ‘단 하루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내가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님은 어떤 기준을 세워보실 수 있을까요? 그 기준점을 기반으로 또 하루도 의미 있는 시간 쌓아가시길 오늘도 응원합니다. 그럼, 또 봬요!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DNA입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포털의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GS샵, 인터파크, SPC 등 이커머스 회사와 뷰티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잼페이스에서 또 다른 시도들을 거듭하며 '익숙함의 DNA'에 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의 직업인'으로 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변화의 앞자락에 서 있는 IT 회사에서 새로운 차원의 지도 '로드뷰',
그리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에 처음으로 ‘모바일웹’ 서비스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분야에서 크고 작은 캠페인 기획, 마케팅 일을 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점 더 호흡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