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화요일 오전 8시 '나답레터'를 통해 발견, 정의, 실행, 달성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저희 가족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장인어른을 2011년 초여름 즈음에 처음 뵀습니다.
저희 부부는 148일간(!)의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요, 저희 둘이 결혼날짜를 정하고 양가에 알려드린 뒤 인사를 하러 갔습니다. 꽤 당돌한 예비 사위를 보시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맞이해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무언가를 아주 꼼꼼하게 물어보시도 않고 큰 경계도 없으셔서 분위기에 스르륵 녹아들어 갔다고나 할까요.
그날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야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네 야구 좋아하나?"
"아... 네네... 아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봅니다"
"그래, 결혼할거면 왠만하면 LG팬하게"
"네, 알겠습니다"
사실 저를 야구장에 처음 데려간 분들이 두산팬들이어서 '그냥 두산팬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그날 바로 LG팬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두산팬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미친놈이 두산팬하다가 LG팬하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결혼식 이후에도 장인어른은 사위에게 조언을 하시거나 그러시지 않으셨습니다. 만나면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러 가고, 계절이 바뀌거나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옷을 사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가족끼리 외식을 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는데요, 결혼 후에 가족끼리 먹으러 가는 재미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지금은 재미를 저희 부모님과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술을 못하셔서 그 당시만 해도 말술 먹는 사위에게 꽤나 미안해하셨습니다. 매끼마다 사위에게는 맥주 한잔이라도 권하시고 제가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장모님께서 해주신 보쌈에 초장을 찍어 먹으며 마시는 병맥주의 맛인 정말 좋았습니다.
명절에는 행여 사위가 심심해할까봐 스크린 골프를 치자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제가 자세도 좋지 않고 잘 못쳤는데, '연습 좀 해라' 같은 말씀을 전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호기 너는 힘이 좋아서 금방 잘치겠다' 정도 말씀하시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골프 클럽 두개도 장인어른이 주신 것입니다.
장인어른은 2015년에 폐암수술을 하셨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수술하시고 빠르게 회복하셨고, 완치 판정도 받으셨습니다. 장인어른과 맛있는 것을 먹고, 쇼핑을 가고, 스크린 골프를 치고 했던 일상의 행복한 시간들은 그때부터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아프셔서 사위에게 잘해주지 못하시는 것을 미안해하시는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을 덜어드리고 싶어서 저는 한달에 한번 정도 찾아뵙고 아내와 아들이 자주 방문했습니다. 장인어른의 장례식을 치르며 '건강이 좋았다면 행복한 기억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장인어른은 지난 3월 호흡이 가파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을 가셨고, 폐렴이 악화되어 돌아가셨습니다. 병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힘든 싸움을 하시며 가족들이 이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셔고, 친구들과 친척분들과도 만나셨습니다. 또, 돌아가시기 전날에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시어, 저희 장인어른을 위해 빌어주소서.
장인어른의 조문객들은 많이 우셨고, 모두다 '너무 좋은 사람인데 너무 빨리 가셨다' 말씀해주셨습니다. 가족과 친구분들이 해주시는 말씀에서 장인어른께서 생전에 어떠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위에게 하셨던 그대로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장인어른과 15년간 나눈 대화보다 장례식 기간 동안 나눈 대화가 더 많았던 것 같아 아쉽습니다. 제가 말씀을 드려도 이제 답하실 수 없으시니 그것도 너무 아쉽습니다.
마지막까지 장인어른의 인품으로 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항상 기억하며 제가 미처 모르는 삶의 가치를 찾아보고 가져보는데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15년간의 직장생활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2019년부터 홍보대행사 '호기P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5년간 열번의 퇴사를 경험하고 커리어 에세이 <호기로운퇴사생활>을 출간했습니다. '프로이직러'라고 불리던 사람이 지난 6년간 스타트업 기업의 홍보를 담당하는 열혈 홍보인으로 변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