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Team DAY1 호진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조금씩 끝나가는 느낌입니다. 10월인데 아직도 더위냐 할 수 있겠지만, 올 여름 더위가 그만큼 길어서 끝나간다는 사실 자체로 반가운 것 같네요. 겨울이 오면 지금의 더위가 그리워지려나요? 더운 기분을 잘 쌓아두어서 추울 때 꺼내면 좋겠네요.
지난주 나답레터에서는 재석님의 반복의 힘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우리가 보낸 시간 중 쓰여지는 시간과 쌓여가는 시간에 대해서 구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쌓아가는 시간에는 기다림이, 쓰여지는 시간에는 여유를 갖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2000일 넘게 매일 아침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어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는 쌓아가는 시간이 되고 있는데요. 꾸준히 글을 쓰는 과정이 저를 돌아보고 나다움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어요. 덕분에 책도 내고,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기도 했지요.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4주마다 돌아오는 <나답레터>의 글을 쓰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에요. 아무래도 블로그와는 다르게 쓰고 싶다 보니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소재를 잡는 게 참 어려워요. 어떤 내용의 글을 써야 하나 고민되기도 해요. 기존에 썼던 것과는 다른 소재로 쓰고 싶다는 욕심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정확히 말하면 핑계에요. 진짜 이유는 게으름 때문이에요. 제 안의 "미룬이"가 최대한 미룰 때까지 미루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매번 일찍 준비하자 싶다가도 꼭 재석 님의 뉴스레터를 보고 나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심정으로 소재를 찾고 주제를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언제나 그렇듯이 "미룬이"의 핑계는 충분해요. 구독자 분들께 가급적 최신의 마음 상태를 보내드리고 싶다는 게 바로 그것이죠. 너무 일찍 글을 써 버리면 그 사이 제 생각이 바뀔까봐서요. "미룬이"의 합리화 기술도 참 대단한 것 같네요.
다행히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써야 할 이야기가 "짠" 하고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쓰면 되겠다라는 생각도 정리했고 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또 미룬이가 나타났고 며칠 뒤에 쓰면 되겠거니 싶어서 내버려뒀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생각이 턱하니 막혀 버렸습니다. 쓰려 했던 내용이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더군요. 도대체 뭘 쓰려고 했었을까요? 괜한 나이탓을 하게 되더군요. 예전에는 이렇게 홀라당 잊은 적은 없는데 말이죠.
언젠가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
사실 글을 쓰면서 이런 경험이 꽤 많았어요. 달리기를 하다가 생각난 것도, 자기 직전 떠오른 것도 막상 글을 쓰려면 홀라당 까먹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기록을 해두면 된다는데 그게 익숙지 않다보니 매번 후회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 간단하게 메모라도 해뒀으면 생각을 꺼내느라 고심하지 않아도 될텐데 말이죠.
그런데 최근 우연히 보게 된 <선재 업고 튀어>에서 한 대사를 보고 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맞아요. 1년도 지난 그 "선재" 맞습니다. 어쩌다 보니 뒷북을 치고 최근에서야 정주행 했어요. 내용은 차치하고 거기에서 할머니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여. 삶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수만 가지 기억들이 다 어디로 가겄냐. 모두 다 내 이 영혼에 스미는 거여.
할머니가 드라마에서 말씀하신 상황과 맥락이 저의 경우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잊어 버린 소재는 분명 사라지지 않았을 거란 믿음이 생겼어요. 제 영혼이 됐든, 잠재의식이 됐든 스며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소재라는 구슬이 올라왔다가 진흙 속으로 사라졌지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짠"하고 나타날 거라 생각해요. 제 영혼은 다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요. 오히려 "짠"하고 나타날 때 더 좋은 글로 만들어 질 거라 믿어요.
자책보다는 흘려 보내기
사실 제가 오늘 말하고 싶은 건 단순히 기록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소재가 없어졌던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이야기에요. 비록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다시 살아날 거라 믿어 버리고 흘려 버리자라는 것이 바로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에요.
살다 보면 우리는 후회하거나 자책할 때가 많아요. 제가 기록을 하지 못해서 소재를 날려 버린 것처럼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후회가 과연 쓸모가 있을까요? 저는 오히려 흘려 보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정신승리라 할 수 있죠.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면 인연이 아니었을 것이고, 손해를 보았다면 더 큰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나를 붙잡는데 더 도움이 되는 사고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고 모든 잘못을 정당화하자는 말은 아니에요. 철저하게 비판하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쌓아가는 시간과 쓰여지는 시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는 반성하는 시간과 흘려 보내고 위로하는 시간이 잘 배분되는 것도 필요해요.
흘려 보내는 것이 더 좋은 기회를 잡고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너무 자책하지 말고 적당히 흘려 보내자고요. 미룬이도 적절히 우리 안에 살아서 움직일 수 있도록 내버려 두기도 하고요.
평범한 금융권 직장인으로 살다가, 버킷리스트를 만나 제가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과감히 휴직을 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나"를 찾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면서 저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었고, 감사하게 <퇴사 말고 휴직>, <결국엔, 자기발견> 이라는 두 권의 책을 내게 됐습니다. 지금은 '버킷리스트'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 후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