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Team DAY1 호진입니다. 지난주 재석님의 나답레터 잘 보셨나요? 재석 님의 레터를 볼 때마다 매번 깜짝 놀라곤 해요. 제가 고민하는 것들을 항상 짚어 주시거든요. 최근에 어떻게 하면 감사하는 마음을 장착할지 궁리하고 있었는데 일상에서 한 번 더 감사를 표현하는 게 필요해 보였어요.
안 읽어보신 분들도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아들과의 유럽여행
지난 3월, 저는 둘째 아들과 단 둘이 유럽여행을 다녀왔어요. 아이와 함께 하는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 마주할 때도 많았어요. 혼자서 아이를 돌보다 보니 어려움도 종종 있었어요. 챙길 것도 많았고요. 그런 순간들마다 도움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아이 또한 한 명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올라온 것 같았어요. 여행을 하면서 제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그 속에서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저에게는 조금 특별한 시간이었어요. 회사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서 떠나는 긴 여행이었거든요. 프리랜서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곧 돈을 벌 "기회"를 스스로 내려 놓는 것과도 같은 것이기에 불안했어요. 게다가 여행으로 돈을 많이 써야 했기에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어요. 자리를 비워도 되는지, 이 돈을 써도 되는지 한참을 망설였어요. 비행기 티켓 취소 기한까지 갈까 말까 고민이 컸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났던 건 어영부영 하다 취소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었어요. 물론 무의식 속에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취소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몰랐는데 조금 지쳤던 것 같더라고요. 초등학생인 아들과 지금이 아니면 좋은 추억을 못 만들 것 같다는 핑계거리도 충분했고요.
어쩔 수 없이 하루에 집중하며 살기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이 있죠.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는 말도 있고요.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지른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기대 이상이었어요. 오랜만에 가 본 유럽은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예뻤고,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들 또한 저의 감각을 일깨워 주었어요. 감사한 분들 덕분에 제가 진행하는 버킷리스트 워크숍을 유럽에서도 열 수 있었고요.
1,2월 바쁘다는 핑계로 준비를 많이 못했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이기도 했어요. 가장 큰 것은 하루에 집중하며 살았다는 점이었어요. 철저히 준비하지 못했기에 하루살이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것에 골똘히 집중하며 지냈어요. (J형은 이해 못하시겠지만.)
밥은 뭘 먹을지, 오전에 어디를 가고, 오후에는 뭘 할 지, 티켓은 어디서 어떻게 구할지,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등 매일 제가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면서 지냈어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여행을 하다보니 여행이 끝날 때 쯤 신기하게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상쾌함을 간만에 느낄 수 있었어요.
최근 일에 대한 고민이 컸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그 속에서 프리랜서로서 생존에 대한 압박도 컸어요. 하지만 하루에 집중하면서 살다 보니 그런 고민이 사라졌어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덕분에 풍경도 예뻐 보이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바쁘게 지낸 2주 간의 시간이 빌게이츠의 생각주간(think week)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혼자서 한적한 곳에 앉아서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것들에 집중하면서 보내는 시간이야 말로 제가 하고 있는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머리를 가볍게 만들었어요.
그렇다면 생각을 안하고 있었던 시간들이 제가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여전히 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컸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생각을 멈춘 것이지 해결책을 찾은 시간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고민을 멈춘 2주간의 시간 덕분인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그리고 좀 더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네요. 사실 제가하고 있는 고민들이 막연한 불안함과 두려움 때문이었거든요.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도 했고요. 그러니 굳이 애써 고민을 키우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지금 제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집중하는 게 훨씬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결하는데 필요해 보였어요.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 하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생존을 위한 가장 필요한 해결책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후부터 매일 그날의 투두리스트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요. 그것만 잘 하면서 하루를 보내자는 마음으로 집중하고 있어요. 덕분에 일의 효율성도 올라갔어요. 마음도 훨씬 가벼워졌고요. 그래봤자 열흘도 안 된 상황이지만요.
<나답레터> 구독자 분들께 저의 여행을 통한 생각정리가 어떻게 다가오셨는지 궁금하네요.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염장질을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 글을 쓰는 내내 조금은 조심스러웠어요. 혹시나 제 글이 불편했다면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여행이 좋다라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어요. 대부분의 부정적 감정은 쓸데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고, 괜한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생각을 많이 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선물같은 하루에 집중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 진짜 필요할 수 있어요.
평범한 금융권 직장인으로 살다가, 버킷리스트를 만나 제가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과감히 휴직을 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나"를 찾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면서 저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었고, 감사하게 <퇴사 말고 휴직>, <결국엔, 자기발견> 이라는 두 권의 책을 내게 됐습니다. 지금은 '버킷리스트'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 후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