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안녕하세요. Team DAY1 호진입니다. 오늘 <나답레터>에서는 달리기 이야기를 꺼내 볼까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는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는 책입니다. 달리기에 대한 욕망에 불을 지피는 책이랄까요? 그는 매일 10km 씩 꾸준히 달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요. 그에게 달리기는 유익한 운동이자 동시에 자신의 향상성을 도모하는 상징적인 행위라네요. 저에게도 달리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운동인데요. 이 책의 제목을 따서 이번 뉴스레터를 보냅니다.
춘천마라톤 42.195km 달리기
지난 10월 29일 제 생애 세 번째 풀코스 마라톤을 춘천에서 뛰었습니다. 연습도 제대로 못했고, 춘천 대회는 처음이라 긴장이 됐어요. 코스가 험난하기로 유명한 대회라 걱정부터 앞서더군요.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출발선 앞에 섰습니다. 기록에 연연하기 보다는 달리기 자체를 즐기자고 말이죠.
총성이 울리고 달리기가 시작됐어요. 명성대로 처음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더군요. 빨리 가려 하는 마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천천히 달렸어요. 마음이 앞서면 중간에 퍼질 수 있으니까요. 힘들 때면 하늘도 보고 의암호의 멋진 단풍도 보면서 달리기 자체를 즐기려 노력했어요. 다행히 처음에는 힘겹더니 페이스가 올라오면서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km를 지나면서 조금씩 몸이 지쳐오기 시작했어요. 29km 구간인 춘천댐 부근을 지날 때에는 허벅지에서 찌릿하는 게 느껴졌어요. 쥐가 날 것 같았죠. 몸의 신호에 집중하면서 다시 속도를 조절했어요. 멈추거나 걷게 되면 더 힘들다는 걸 알기에 겨우겨우 달렸네요.
37km 구간에 다다랐을 때에는 욕심이 생겼어요. 페이스 조절만 잘하면 4시간 이내에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올라왔어요. 때마침 제 앞을 지나가는 페이스 메이커를 보며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젖 먹던 힘을 다 해 열심히 달렸죠. 하지만 40km 지점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달리기가 힘들더군요. 더이상 힘을 내기가 어려웠어요.
결국 4시간 기록에 50초를 넘겨서 골인 지점을 통과할 수 있었네요.
즐겁게 완주했으니 충분하다!
제 기록을 보더니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어요. 50초만 일찍 들어왔어도 sub 4 (4시간 이내로 들어오는 것) 를 할 수 있었을 거라며 말이죠.
달리기를 하면서 내심 기대도 했지만 도착하고 나니 전혀 아쉽지 않았어요. 우선 50초를 줄인다는 게 꽤나 힘든 일이기 때문이었어요. 막판에 힘을 쥐어 짜 봤지만 도저히 안되는 일이더라고요. 안되는 걸 못한 거니 아쉽지 않은 건 당연했죠.
또한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의 목표는 기록에 있지 않았어요. 마라톤 레이스를 즐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했어요. 힘든 구간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린 저 스스로를 칭찬해 주고 싶었어요. 신기했어요. 누구보다 숫자에 민감해서 기록을 깨는 걸 중시하는 사람인데 아쉬운 기록이라도 괜찮더라고요.
때마침 지누션의 기부천사 "션"님께서 인스타그램에 올린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는 풀코스 sub3에 도전하면서, 성공하면 1m당 1000원씩 기부해서 총 42,195,000원을 국내 최초 루게릭요양병원 건립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3시간 37분의 기록으로 완주했어요.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바람에 제대로 뛰지 못했다더라고요.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어요.
우리의 삶은 결과에 따라 실패와 성공이 있는게 아니라 모든게 과정인거 같습니다. 내가 할수 있는건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겁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과정 안에 다리에 경련이 오는것 같이 시련이 있을지라도 혹시 잠시 멈출지라도 포기 하지 않는다면 실패가 아닌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만들어 낼수 있습니다.
그가 글로 남겼듯이 저 또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했거든요.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록과 상관 없이 풀코스 완주라는 경험 자체가 제 인생에 또 하나의 과정을 만들어 준 것같아 감사했어요. 덕분에 완주 자체로도 승리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네요.
그래서였을까요? 완주 후 찍은 셀카가 너무 곱게 나왔더라고요.(제 생각에..) 분명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너무나 평온한 듯하게 찍혔더군요. 이게 바로 마라톤 필터 효과가 아닌가 싶었네요.
응원의 한 마디
이번 춘천 마라톤에서 잊지 못할 순간은 40km 지점이었어요. 도저히 못 달릴 것 같아 잠시 멈춘 적이 있었어요. 마지막은 그냥 걸어야겠다 생각한 순간이었죠. 그 때 한 분께서 큰 소리로 저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던져 주셨어요.
"얼마 안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그 말을 듣는데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너무 힘든 순간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니 뭉클하더라고요. 뭔가 큰 기운을 받은 것 같았어요. 말 한마디가 저를 움직였죠. 그리고 힘을 내어 달리기 시작했고 포기하지 나머지 2.195km를 뛸 수 있었어요.
2019년에 첫번째 풀코스를 달렸을 때도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갈증이 너무 심하게 올라왔을 때 응원오신 분께 레몬을 얻어 먹었어요. 레몬의 신맛이 저의 근육에 자극을 주었어요. 잊지 못할 맛이었죠. 도착 지점에 다다를 수록 힘을 내어 응원해 주는 많은 사람들 또한 제게는 큰 힘이 되었어요. 비록 그들은 저를 응원하는 게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화이팅이라 외쳐주는 목소리가 큰 힘이 되더라고요. 응원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죠.
우리 삶도 비슷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힘들고 어려울 때 낯선 사람들의 응원이 때로는 큰 감동이 되기도 해요. 그들의 진심어린 말 한마디 덕에 울고 웃게 되고 그런 것 같더라고요. 달리기가 가르쳐 준 응원의 힘이었어요. 뻔한 말이지만 응원해 주는 한 마디가 참 고맙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요.
밤새 말해도 끝이 없는
"달리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네요. 그만큼 달리기가 제게 가르쳐 준 것들이 많아요. 달리다 보니 저와의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고 순간 순간에 의미부여를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달리기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달리기가 그만큼 저에게 잘 맞는 운동이기 때문이기도 해요.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길게 달리는 것이 저의 성향과 잘 맞더라고요.
그렇다고 이 글을 통해서 구독자 분들께 달리기를 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예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운동이 괜히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제 이야기를 통해 자기에게 맞는 무언가를 찾으셨음 좋겠어서 제 달리기 이야기를 꺼내 봤습니다,
나에게 맞는 걸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보셨음 해요. 뭐가 됐든 맞는 걸 찾으시면 새로운 기쁨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러면 그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질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거라 믿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제가 드린 달리기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에 "새로운 도전"이라는 불꽃을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네요.
평범한 금융권 직장인으로 살다가, 버킷리스트를 만나 제가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과감히 휴직을 하고 무모한 도전을 하면서 "나"를 찾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블로그에 매일 글을 쓰면서 저를 좀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었고, 감사하게 <퇴사 말고 휴직>, <결국엔, 자기발견> 이라는 두 권의 책을 내게 됐습니다. 지금은 '버킷리스트'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퇴사 후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