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겨울⛄ 님은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미국의 심리학 전문 매체인 ‘Very Well Mind’의 어떤 기사를 보니, 다가오는 계절 ‘겨울’을 좋아하신다면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가? 갸우뚱하실 수도 있겠네요. 각자 다르고 다양한 ‘취향’에 일률적인 기준을 정의하기 어려우니 그냥 재미로 듣고 넘기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저만 해도 그래요. 어릴 적부터 한 10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을 참 좋아했거든요. 땀도 많고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었던 터라 여름나기를 힘들어 했고, 겨울이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덜 타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격은 내향적? 글쎄요… 오랫동안 저와 시간을 보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살면서 내향적이었던 기억은 잘 없는데 말이죠.
구독자님~ 저와 취향이 통하셨군요!
언제라도 <나답레터>에 쓸 글감이 떠오르면 폰에 수시로 메모를 해 놓는데, 요즘에는 '취향'에 대한 것들을 많이 써 놓았더라고요. 그러던 중, 지난주 호진님이 <나답레터>에서 전해 주신 ‘풀코스 마라톤’ 이야기에 한 독자분이 아래와 같이 응답해 주셨어요.
한 가지 물건을 오래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구독자님의 말씀에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한 가지 물건을 오래 쓰는 것’도 하나의 ‘취향’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아침 출근길에 페이스북 앱을 열어 ‘과거의 오늘’ 메뉴를 한번씩 열어 보는 게 취미인데요. 10년도 넘은 사진 속에서 제가 입고 있는 옷을 2023년의 오늘 그대로 입고 있는 경우도 많고, 거의 매일 메고 다니는 백팩은 8년 정도 저와 함께하고 있어요. 일하러 갈 때도, 여행용으로도 활용도가 높은 이 친구가 참 튼튼하고 든든합니다. 돌아보면, 일부러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건 아닌데 유행이 지났거나 물욕이 급 발동하는 등의 이유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새로 구매하는 편은 더더욱 아니에요. 마케팅 일을 하면서 특정 시점의 트렌드를 알고 경험하기 위해 어떤 브랜드나 제품들을 구매하는 일은 있지만요. 검소한 걸까요? 이런 게 미니멀리즘?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새로운 곳에 가서 주변을 관찰해 보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시간은 좋아하지만물건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에서 느끼는 기쁨이 크지 않은 게 제 취향인가 봅니다.
손때가 묻을수록 취향의 색깔도 짙어 집니다
이미 12년째 쓰고 있고 앞으로 12년은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 오래된 물건 중 하나가 지갑이에요. 따져 보니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여행지에서 더위를 피할 겸 쇼핑몰에 들렀다가 득템한 3단 지갑인데요. 3단으로 접히니까 일반적인 남성용 반지갑보다 작아서 휴대하기 좋고 왠지 차가운 느낌의 검정색보다 좋아하는 따뜻한 갈색, 그 중에서도 조금 오염돼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짙은 계열의 갈색이 맘에 쏙 들었어요. 전통적인 명품까지는 아니어도 소위 말하는 ‘매스티지 Masstige’ 브랜드 C사의 제품이라 품질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음각이 희미해진 지는 이미 오래. 군데군데 실밥이 튀어 나오기도 했는데 한두 달에 한번 정도 라이터로 살포시 지져 주면 다시 깔끔해 지고요. 태생부터 건실한 박음질에 헤진 곳 하나 없이 반듯하게 저의 일상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입사 선물로 받아 15년 넘게 쓰고 있는 명함 지갑도 있죠. 우산을 잃어버리는 일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 같고,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은 있어도 두 개의 지갑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랜 시간동안 제 곁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이미 나와 한 몸! 앞으로 10년, 20년을 함께할 것 같은 친구들 특히 왼쪽 지갑은 #4E3E46의 짙은 갈색에 하루하루 손때가 묻을 때마다
언제까지나 떠나 보내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어요.
한 5년 전쯤이었을까요? 지갑이 너무 낡았다고 아내가 새 지갑을 선물해 주었어요. 새 것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니 당연히 오래된 지갑이 낡아 보이기는 했습니다. 아내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고 쓰던 지갑이 조금 더 낡아지면 새 것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로도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네요. 오늘의 뉴스레터를 쓰며, 오랜만에 새 지갑을 꺼내 보았습니다. 쓰던 것이 낡아 보일 수는 있지만 지갑 두 개 들고 다니면서 비교해 볼 것 아니니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새 것이 좋아 보일 수도 있죠. 그렇지만 보고 또 보니 손때 묻은 지갑이 훨씬 좋아 보였습니다. 취향이니까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오래 쓴 물건이 ‘왜 더 좋아 보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를 꼽자면 그 제품 자체가 갖고 있는 현재의 상태 또는 어떤 물리적인 속성이 아니라 물건을 대하는 저의 마음가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꿔 말하면, ‘새삥’이라고 부르는 것도 시간이 금세 올드 패션드 아이템이 되어 버린다는 생각,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마음, 다른 사람들과 뒤섞여 유행을 좇기보다 나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물건이 더 좋다는 생각 같은 것들이죠. 특히나 요즘처럼 세상 모든 영역에서의 ‘변화’가 가속화된다면 물건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어떠한 원칙이나 마음에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가 오히려 높아질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 가치가 바로 ‘나다움’이 아닐까 싶군요.
님은 어떠세요? 오랜 시간 사용하거나 간직해 온 물건이 있으신가요? 혹시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버리지 못한 것이라면 왜 그랬을까요?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것이 알고 싶다>는 아니지만...다양한 질문을 던져 봅니다.
오늘의 <나답레터>를 써 내려가면서, 인사말에서 적었던 계절에 관하여, 커피 취향, 공간이나 자리, 좋아하는 시간대,그리고 일을 하는 방식이나 원칙에 대해서도… ‘취향’을 중심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아직 더 많습니다.. 차차 함께 풀어가 보시죠. ‘취향’이라는 주제를 나눌 수 있도록 영감을 선사해 주신 구독자님의 피드백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리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잖아요. 누구나 갖고 있는 DNA입니다. 전혀 이상할 게 없죠. 포털의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첫 회사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GS샵, 인터파크, SPC 등 이커머스 회사와 뷰티 콘텐츠를 다루는 스타트업 잼페이스에서 또 다른 시도들을 거듭하며 '익숙함의 DNA'에 변이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새로운 마음가짐의 직업인'으로 저를 소개해 드립니다. 변화의 앞자락에 서 있는 IT 회사에서 새로운 차원의 지도 '로드뷰',
그리고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는 시기에 처음으로 ‘모바일웹’ 서비스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분야에서 크고 작은 캠페인 기획, 마케팅 일을 하며 새롭게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익숙해졌습니다. 점점 더 호흡이 빨라지는 세상에서 항상 열린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