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시작되는 걸까요? 비가 내리고, 꿉꿉한 날씨가 이어지네요.이럴 땐 괜히 짜증지수가 올라가곤 하는데요. 이상하게도 짜증이 날 때는 가장 편한 사람에게 화를 내곤 하죠. 다 날씨 탓입니다. 혹시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이 습기 가득한 날씨를 탓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난주 재석 님이 ‘친구’에 대해 쓴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편안해 지실 겁니다.
재석님께서 쓰신대로 저 역시 주변에 있는 좋은 친구들 덕분에 늘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저에게는 다들 스승같은 존재인데요. 최근 나답레터 필진인 상혁님의 풀업대회 도전기도 제게 큰 영감을 주었는데요. 덕분에 저도 제 일상에서 작은 실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커피를 끊어보자
저는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셔야 정신이 드는 사람입니다. 커피 속 카페인이 체내에 흡수돼야 비로소 온전히 깨어나는 느낌이 들죠. 그래서 아침마다 어김없이 커피를 찾게 됩니다. 특히 달리기를 마치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꿀맛입니다. 달리며 분출된 도파민이 카페인과 함께 온몸에 퍼지는 듯한 기분이거든요.
그런데 문득, 커피를 끊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익숙해져버린 이 습관이 과연 좋은 걸까, 의문이 생겼습니다. 일상에서 새로운 실험을 했던 상혁님의 풀업 챌린지가 저의 무의식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커피 끊기의 시작일을 6월 6일, 현충일로 정했습니다.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 그냥 그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마침 연휴라 각성용 카페인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첫날. 오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끊으면 두통이 생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증세인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요. 결국 두통에 시달리다 낮잠을 자고,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집에만 머물렀습니다. 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오더군요.
둘째 날.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무심코 아이스 아메리카노 반 잔을 마시게 됐습니다. 별생각 없이 마셨는데, 그날 밤 심장이 벌렁거리고 잠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반 잔 때문이었을까요?
그날 이후로는 다시 커피를 입에 대지 않고 있습니다. 7일에 마신 반 잔을 빼면 어느덧 열흘 넘게 커피 없이 지낸 셈입니다. 의외로 커피 없이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물론 길거리를 걷다가 남의 커피잔을 힐끗 본 적은 여러 번 있었지만요.
커피를 끊고 나서 깨달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가장 먼저, 그동안 제가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침마다 텀블러에 큰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아 홀짝이며 오전을 버텼고, 점심 후에도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면 그걸로 하루가 끝났습니다. 물은 입에 잘 안댔습니다.
커피를 끊은 덕분에 이제는 물을 많이 마시게 되었습니다. 보리차나 생수를 중심으로 자꾸 입이 심심하니 자연스레 물을 들이키게 되더라고요. 내친 김에 하루 2리터씩 마셔보자는 도전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그 양이 꽤 많더군요. 지금까지는 화장실만 자주 가는 것 말고는 특별한 신체 변화는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해보려 합니다.
커피에 ‘맛’이 아닌 ‘습관’으로 의존해왔다는 점도 이번에 깨달은 점이었어요. 커피의 고급 원두를 마셔도 저에겐 비슷한 맛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냥 아침이니까, 당연히 마시는 거니까, 그렇게 마셨던 것 같아요. 사실 굳이 마시지 않아도 됐는데 말이죠. 커피가 몸에 이롭냐, 해롭냐를 떠나서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다음에 커피를 마실 때는 습관성으로 그냥 들이키기 보다는, 본연의 맛을 음미해 보고 싶네요. 새롭게 커피를 마실 때에는 어떤 맛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설렙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경험을 통해 일상의 작은 변화가 만들어내는 신선한 자극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팀 페리스의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에는 라이언 셰어의 ‘한 달 살기’ 실험이 등장합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하기로, 또 무엇을 하지 않기로 정하고 그 계획에 따라 살아보는 것이죠.
"각 달의 계획을 세워 실천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뭔가를 제거하지도 않고, 뭔가를 시도하지도 않는 날을 내가 얼마나 많이 보냈는지를,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는 것을. 현재에 집중하려는 삶을 살려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각성시켜주는 구체적인 계획과 지루하지 않은 반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p.306)
물론 저도 아직 그가 말한 ‘현재에 집중하는 삶’에 온전히 다가서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단지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제 삶의 지루한 반복에 작은 틈 하나쯤은 생긴 듯합니다. 그리고 그 틈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자각이 은근히 재밌습니다.
무엇을 끊어 보시겠어요?
매년 ‘하고 싶은 일 100개’를 적으며 제 내면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록에는 '끊어 보기'도 포함되곤 합니다. 그런 맥락으로 한 달 동안 고기를 끊어본 적도 있었죠. 그때 고기를 끊어 보면서 장기의 편안함과 고기 없이 식사하는 불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네요.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반복하는 일들 중 일부를 잠시 멈춰보는 것만으로도, 의외의 발견이 시작되곤 합니다. 그 멈춤의 순간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하다 보면 일상에도 새로운 재미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관찰은 자연스럽게 ‘나’를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일주일 정도 뭔가 하나쯤 ‘끊어보는 실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다음 레터에서, 열흘이 아닌 한 달 넘게 커피를 끊은 뒤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다시 나눠보겠습니다.